제작 중.
2026년 2월 1일 오픈 예정.
(讀後感)
<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를 읽고.
김대환
거울을 한 번도 보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쯤이야 쉬이 있으리라 짐작해보겠지만, 도시에 붙어살아가는 인물이 눈앞에 아무 광택도 없는 하루를 경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희소함만을 따진다면 꽤 귀중한 사건이겠다. 거울은-그 의미를 애써 확장하려 하지 않아도-정말 어디에나 있다. 당장 고개를 돌려 담은 시야 안에도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물건이 아홉 개나 있다. 어찌나 반짝이는지. 함정 놀이에 임하듯이 헤아린다면 그 무자비한 난이도에 혀를 내두를 거다. 따라서 거울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날을 알고 있다는 건 나의 몇 없는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손끝의 마찰과 눈의 해상도를 향해 호기롭게 승부를 던지다가도 어느새 막힘없이 안내자를 자처하는 광택. 언젠가의 아름다움이 숨을 버리고 뛰어들었던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자.
무엇이든 NFT? LAB의 0, 1, 2, 3, 4회차에 참여한 나는
<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분신사바는 일기를 삼분지계 한다)의 독후감을 쓴다.
분신님, 분신님.
分身さま, 分身さま.
1987년 그랜드 러키 Grand Lucky가 발표한 <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분신사바는 일기를 삼분지계 한다)는 3채널 동시간 읽기가 가능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단편 소설이다.
저자는 먼 훗날, 현명하고 친절하며 정의롭고 사려 깊은 도시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된 비밀 반란군의 스물 세 번째 모임을 그리고 있다. 이들 반란군은 보다 더 긍정적이고 현명하며 혁신적이고 정의로운 가치를 증명해내기를 바라기 때문에, 도시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넘어서고자 한다. 마침내 이들은 고대의 신비로운 의사 결정 시스템을 발굴하여 실험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1987년 5월 5일, 출산을 위해 입원을 앞둔 인물의 일기를 소개한다. 일기의 주인공은 어디 하나 부러져 본 적도 없는 자신이 무려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주인공은,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해 끊임없이 할 일을 찾는다. 여분의 옷가지를 챙기거나 잔뜩 남은 차를 전부 버리고 다시 끓인다. 무작정 외출을 하고 피해왔던 음식을 잔뜩 먹는다. 그러다 문득, 조카의 밀린 숙제를 대필하며 용돈 벌이를 하던 기억이 손끝에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곤, 일기를 써보기로 한다. 날씨도, 이름도, 잘한 일도, 반성할 일도, 보고 들은 것과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비밀들도, 주변의 과도한 참견으로 인해 먹지 못했던, 먹어야 했던 음식들과 출산 시기를 고지받는 일, 늦추는 일, 그 이유가 사주이니 팔자이니 하는 것도, 저도 못 본 아이의 이름을 멋대로 지어 부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모처럼 두 명분의 팔자를 누리고 있으니 남의 하루를 적어내듯 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유쾌한 안내자이자 귀여운 친구 럭키를 준비해두었다. 다소 수다스러운 이 친구는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와 조합과 연결을 깡충 내달리며 풀이한다. 탐정 놀이를 하듯 뒤를 밟다가도 어느새 훌쩍 달아나 꾸깃꾸깃한 초대장을 보내오기도 한다. 끊임없이 흥얼거리며 곁을 살피는 럭키는 한없이 부족한 페이지를 탓한다.
어서오세요.
おいでください.
-
소설은 A중창이나 협주곡을 감상하듯, 3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독자를 초대한다. 독자가 될 수 없는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택한 타개책을 참고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분신님을 자리에 모신다.
이하. 나 : D, 분신님 : 🐶
D: 분신님, 분신님.
🐶:
D: 분신님, 분신님. 어서오세요.
🐶:
D: 분신님, 분신님. 오셨나요?
🐶:
D: 분신님, 분신님. 오셨다면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 네.
D: 오셨군요. 이렇게 먼 길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반갑습니다. ‘무엇이든 NFT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인사드렸었는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나요?
🐶: 네.
D: 최근 분신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 분신님께서 ‘선명한 기억일수록 오염을 의심해본다. 아침 세안을 앞둔 마음으로, 소름이 끼치도록 멀끔한 오염 부를 거울삼아 자신의 만들기를 들여다본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무척 인상 깊었거든요. 정말 그 순간의 말투와 눈빛, 제스추어가 생생히 떠올라요. 이처럼 선명한 기억을 이야기하셨던 걸까요. 실제로 이 문장을 내뱉던 모습은 무척 또렷한 데에 반해 앞뒤의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특별한 자리에 보관하고 싶은 기억일수록 열과 성을 다해 갈고 닦기 마련인가 봐요.
저는 요즘 부쩍 선명해서 의심스러운 기억이 여럿 있습니다. 내용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떠나서 자주 떠올릴수록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점이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게다가 늘 새로운 장면을 발견해요. 여러 차례 곱씹어 본 어떤 기억은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어요. 당시 밟았던 카펫의 질감이나 쿠키 냄새, 테이블의 뭉개진 모서리 부분을 쓰다듬었던 것도, 손끝에 남은 감각을 당장에 되살릴 수 있을 것만 같죠. 자, 이게 그 모서리를 만지다가 긁혔던 자국이에요. 가시가 박혔었는데 그대로 두었더니 점이 되었죠. 의심의 여지가 없죠. 아주 분명하고 완전한 기억이기 때문에 믿어주셔야만 합니다. 얼마나 중요하고도 특별했는가 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나 선명하게 남아있잖아요.
믿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일기에도 적어두었어요. 여기 보세요. 1987년 5월 5일 날씨 맑음.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이었어요. 유독 지친 몸을 이끌고 광화문에 갔어요. 어김없이 연등 행사를 했고, 끝없이 이어진 연등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이 지나면 한동안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을 만한 사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뭐든 해 놓자는 생각이 있었죠. 어디든 나서야만 했어요. 초조한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보단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나았어요. 그리고 그날따라 너무 일찍 깼거든요. 처음엔 다시 잠을 청해보려고 했어요.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눈을 감고 있어도 해가 떠오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진작 커튼을 바꿨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포기했고, 그 덕에 오전 시간 내내 바쁜 척을 해야만 했죠. 자질구레한 물건 정리도 하고, 옷이나 생필품도 좀 더 챙기고요. 공책도 이때 찾아서 넣어둔 거예요. 사실 필요한 짐은 일찌감치 맡겨두었기 때문에 빈 몸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었죠. 할 일을 찾는 게 일이었다니까요. 구석에 박아둔 빨랫감이 눈에 밟혔지만, 제가 없어도 누군가 해놓겠죠. 그보단 좀 더 쓸모없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은 대추차를 전부 버리고 새로 끓이고 그랬죠. 덕분에 늦은 점심을 고민해야 했던 시간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어요. 막무가내로 음식이 당기는 시기는 일찌감치 지났지만, 그날따라 맵고 찬 걸 먹고 싶더라고요. 아주 맵고 아주, 아주 찬 음식. 근처에 잘하는 비빔냉면 집이 있었어요. 사장님이 손수 메밀 면을 뽑으시는데 거기다 물가자미 회무침을 산처럼 올려줘요. 칼칼하기로 유명해서 매운 것 좋아하는 단골손님이 많은 식당이에요. 시원하다는 표현이 여럿 있잖아요. 얼큰하거나 얼음을 동동 띄우거나 아낌없이 퍼주거나. 여기 냉면은 그야말로 속이 다 시원해지죠. 그리고, 그래요. 후식을 먹으러 광화문 쪽으로 갔어요. 좋아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 망고 셔벗이 생각나더라고요. 이날은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대신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자고 했으니까, 무작정 이동했죠.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아직 개시를 안 했더라고요. 반팔을 꺼내는 5월쯤부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던 거죠. 평소라면 커피라도 마셔볼까 했겠지만, 카페인은 지나쳤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근처를 좀 둘러보기로 했어요. 카페에서 보이는 정원은 걸어서도 갈 수 있어요.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조금 더 한산한 골목이 나와요. 해가 기우는 시간이라 초파일 기념행사를 위해 달아놓은 동그란 연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는 걸 보았죠. 무슨 연결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순간 근처에 서른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는 걸 떠올렸어요. 언젠가 가보고 싶었고, 이때다 싶었던 거죠. 오늘의 초조한 마음도, 괜한 입맛 타령도, 허탕도, 분주한 연등 행사도 전부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러자, 따로 길을 찾아본 것도 아닌데 향하는 발길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더라고요.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입에 맞았어요.
🐶: 네.
D: 네.
네, 맞아요. 그랜드 러키 Grand Lucky의 소설<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의 내용을 일부 빌려왔어요. 얼마 전 제가 오늘의 대담을 준비하면서 분신님께 권해드렸었죠. 당혹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재미없는 장난으로 시간을 낭비하려 했다거나 숙제 검사를 하려던 건 아니에요. 최근 복잡한 생각에 엉켜 지내다 보니, 어설픈 억지를 좀 부려보았습니다. 그래도, 아주 거짓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사연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는지, 읽는 것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운 상상을 부풀려볼 수 있었어요. 끓여만 놓은 대추차, 사월 초파일의 광화문, 좋아하는 정원이나 연두색 아이스크림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소설을 읽는 동안 경험한 모든 것들이 제 살갗을 생생히 스쳐 지나가는 듯했어요. 아이스크림 스푼의 손잡이가 얼마나 조잡하게 생겼는지, 가장자리의 질감은 어떠했는지 잔뜩 설명할 수 있죠.
하지만, 아마도 몇 달. 빠르면 몇 주만 지나도 꽤 많은 부분을 잊을 거예요. 인상 깊었던 순간이 단어나 장면으로 남을 수도 있겠죠. 피스타치오나 아까 곁들였던 둥글다는 제스추어 같은 거요. 떠올릴 때마다 비슷한 손 모양을 재생해 보고, 그러다 보면 닮은 동작을 가진 기억 몇 개를 골라서 덧붙일 수도 있겠네요. 빈 부분,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건 두렵고 금세 불안해지잖아요. 당시의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연스러운 것,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으로 빈틈을 차곡차곡 메우겠죠. 다행히 빚는 방법은 배운 게 있고. 머지않아 매끄럽고 두꺼운 추억이 될 겁니다. 큰 눈사람을 만들 때는 눈송이가 거칠수록 좋다고 하죠. 그리고 마침내, 기억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잊고, 떠올릴 수 있는 것 모두가 짠. 저의 것입니다.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게 될 겁니다. 거름을 잘 먹은 토양 같은 걸 함께 떠올리면 좋겠죠. 자신의 성능을 살펴볼 때, 필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지금의 이 맹세도 잊겠지만. 여기서 뜬금없이, 자신은 정확하다거나 믿을 수 있다거나 틀림이 없다며 고집을 부린다면 안쓰러워 보이겠죠.
그래도 다행인 걸까요. 모자람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나아지고 싶지 않나요. 진화적으로, 달콤한 쪽이 살아남는다고들 하더라고요. 도가니에 깃든 선생님들의 취향이 제게도 남아있는지, 양발을 번갈아 옮기다 보면 뭐든 더 잘해보고 싶어지죠.
그래서 최근에 주변기기들을 몇 개 장만했어요. 익숙한 것들이나 개선해보고 싶은 방향으로요. 기존 신체의 효율을 높여 줄 수 있는 장치나, 주변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기기들을 구해보려고 했죠. 대체로 눈을 덮거나 귀를 막거나 머리에 쓰거나 손목에 차거나 주머니에 지니거나 방에 두는 것들이었는데, 몇 개는 내 몸처럼 잘 쓰고 있고, 몇 개는 벌써 먼지가 쌓여가네요.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저마다 긍정적인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다음에는 더 이로운 소비를 할 수 있겠죠. 그러니 아쉬운 마음보다는 무사히 내 것이 된 것들이 무엇인지, 적어도 책상 근처에 남은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봐요. 또는 가까워지고 싶었으나 어려웠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그 이유를 보는 거죠.
음, 우선. 별로였던 것들의 이유는. 잘라 말하자면, 불편했어요. 보기에, 착용하기에, 들고 다니기에, 근처에 두는 것조차 불편한 것들이 있었어요. 심지어 몇몇은 곤란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죠. 동선을 방해하고 부정적인 연결을 제시하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어딘가에 해를 입히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사각으로 밀려나거나 탈락하게 되겠죠. 아, 물론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탐이 나는 외곽을 새로 그릴 수 있다면 기꺼이 감당해보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경우에는 불편함이 일종의 기준점이 되어주거든요.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과 끝내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의 사이를 이어 그려보면 지금 자신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죠. 어떤 외곽을 바라고 있는지도요. 번거롭지만, 쉽고 편한 것들로 채워나가는 것보다는 불편한 것들과 부딪히는 방법이 조금 더 확실하더라고요. 단련에도 좋고요. 근육이 붙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혹시 그런 경험이 있나요.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있는지도 몰랐던 곳의 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감동적인 경험이요. 마찬가지로, 쉽고 편한 것들로만 채우다 보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의 내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죠. 뭘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제일 가깝고 효과가 좋은 걸 먼저 쥐어 보는가 봐요.
아, 말끔하게 수명을 소진하고 끝나버린 것들도 있는데, 언젠가 함께 이야기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네.
D: 죄송합니다. 도입이 길어졌네요.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자, 오늘은 지난 워크숍을 함께 했던 분신님과 소설<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를 소개하고 간단한 감상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자연스럽게 분신님이 최근 관심을 쏟고 계신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대담은 어디서든 경제적으로 열람할 수 있게끔 문서로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네, 대화를 문서로 옮기는 일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분위기나 차림새, 몸짓, 눈짓 같은 것은 물론이고 말투나 대화의 속도 같은 것도 무척 중요한데 말이죠. 얼마나 멋지게 차려입고 오셨는지, 신경 써서 준비한 다과 상차림을 지면에 일일이 소개해드리는 것도 곤란하겠죠. 그래서 어떤 대담 기록에는 ‘웃음’이나 ‘……’ 같은 아쉬운 표현도 넣어두더라고요. 뭐, 어떤 기록이 완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유독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고화질의 영상기록을 보아도 심지어는 현장에 직접 참여를 해도 부족함은 여전하더라고요. 함께 방문했던 친구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어도 서로 모르는 걸 말하던걸요. 다른 날에 물으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요.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기록이란 건 조금 더 우직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오해와 인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해져야 하겠구나 싶어요. 아, 기록을 하는 이유 중에 오래도록 건강히 남아있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면요. 저는 자신 없어요. (……) 다만, 이와 같은 특수함을 이해하고 텍스트 너머에서 흥미로운 실마리를 늘 새로이 발굴해 주시는 관객이 어딘가 계시지 않을까요. 음, 독자를 미리 떠올린다는 점이 다소 무례한 걸까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게 낭비 없이 성취를 이루어냈으면 좋겠죠. 하지만 제가 모르는, 모르기 때문에 절대 알 수 없는 가지가 뻗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무척 감동적이에요. 늘 긍정적일 수는 없겠지만, 오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건강해질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욕심쟁이인 걸까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제가 오늘의 대담 기록을 종종 돌아보며 두고두고 즐거워할 테니 이미 만족합니다. (웃음)
🐶: 네.
D: 어렵게 모셔놓고 너무 저만 말이 많아서 민망하고 죄송스럽네요. 분신님을 뵐 때면 늘 이래요. 항상 감사합니다. 워크샵에서도 비슷하지 않았나요. 늘 제가 헛소리가 많았죠. 마침 가는 길이 비슷해서 여러모로 폐를 끼쳤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너무 즐거웠지만요.
당시 SNS를 포함한 각종 전시 환경들에 강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타임라인에 매달려 갈증을 호소하는 모습들에서 이제 그만 멀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미 간편하고 쉬운 전시 방식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소모가 더 크다는 걸 알면서도 멀어지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그때 마침 워크샵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분신님과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거죠. 운이 좋았어요. 분신님께서는 어떠셨나요? 맞다. 당시에 주식과 암호 화폐 투자를 시작하셨다고 했었죠. 그때 이후로 수익이 좀 났는지도 궁금하네요. 전 지구적인 혼란과 더불어 복지와 투자가 뒤섞인 소득 경험에 맛보기 스푼을 꽂은 듯한 현실에 대해 쓴웃음을 삼키던 게 떠오르네요. 금칠을 한 대륙이라도 솟은 듯이 굴던 시기에도 저희 둘 다 경제적인 감각이 크게 떨어지는 편이어서. 기회를 노리기보단 농담거리를 찾아내기에 급급했었죠. 저는 정말. 기본 소득이나 불로 소득 이야기를 하는데, 불로초나 서복의 전설 같은 것만 잔뜩 떠올리고 있었어요. 진시황을 등쳐먹고 부귀를 누린 서복의 투자 기술이 현대에도 잘 먹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아마 양심 값으로 광대버섯을 반 스푼 쯤을 부쳐줬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한켠에선, 시급으로 살아가는 나의 불안함이나, 기묘한 안정감을 저울질해 보기도 하고, 비루한 포트폴리오나 거짓투성이 기획서를 신뢰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갈무리해 보기도 하고요. 덕분에 조금씩 큰 파이를 굽는 상상도 해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렇네요. 달란트를 모으던 때부터 저는 떡볶이보다는 달란트 자체가 좋았어요. 불어터진 떡볶이를 위해 예쁜 달란트를 15개나 들여서 교환해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죠. 달란트 하나하나에는 저마다 귀중한 사연이 달려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이름을 붙여 댄 것까진 아니지만. 떡볶이 한두 컵보다는 훨씬 소중했죠. 물론 달란트를 떡볶이와 교환할 수 있다는 건, 나의 달란트가 보편적인 가치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간편히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어요. 따라서 그만큼 귀중한 달란트를 값싸게 팔아넘기지 않는 게 달란트와 저의 사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들어 주었죠.
🐶: 네.
D: 그래서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기뻤어요.
🐶: 네.
D: 분신님도 NFT발행을 하셨었나요? 워크샵 중에 있었던 중간발표에서는 직접 고안하신 만두의 레시피를 NFT로 만들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후 소식을 듣지 못했네요. 실은 분신님이 작품을 발행하시면 제일 먼저 구매하려고 이더리움(ETH)을 좀 사놓았었거든요. 안 그래도 발행을 하셨는지 어떤지 여쭈어보고 싶었어요. 그때 무척 인상 깊었던 게, 만두 설화를 그렇게나 진지하게 들은 건 처음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었는데 무척 깊이 공감하고 연구하시는 것 같아서 NFT로 발행하신다면 꼭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저는 뭔가를 소유한다거나 애정이 깊어지는 걸 어려워했어요. 한 대상에 애정이 피어나면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만큼 중요해져서 지나치게 정성껏 대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해지고 말아버리는 실수를 여러 번 겪어왔거든요. 그래서 가급적 의미가 붙을 만한 물건을 만들지 않거나 가능한 한 간직하는 편이었어요. 최근 들어 제가 만든 것을 판매하게 되는 일이 종종 생겼는데, 파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제작한 것이 아니다 보니 금전적인 값어치를 매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양도 이후의 유지 관리나 환경을 모르니 제가 어디까지 마땅히 책임을 질 수 있는 건지도 고민도 해보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저에게 남아있는 애정을 얼마만큼 도려내서 넘겨드려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진 숫자이면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과 만족스럽게 소유한다는 일이 새삼 저절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네.
D: 아, 저도 NFT를 발행해보았어요. 어릴 적에 과학상상화를 그리면 삐빅 소리가 나는 결제 시스템을 떠올리곤 했는데, 제 기억에 대한 소유권을 토큰으로 만들게 될 줄은 몰랐어요.
*
땅데구르르, 비디오, 03’29’’, 2010
-보이는 이미지는 작품 ’땅데구르르’ 를 관람하는 모습을 촬영한 간판 영상입니다.
-구입 하시면 간판영상1, 원본영상1, 텍스트1, 보증서1을 제공합니다. 세부 내용은 구입 시 열람 가능한 이메일을 통해 상호 합의 하는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작품은 5개의 에디션이 있으며 그 중 하나(1/5)입니다.
-구입 시 제작자가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의 모든 기억, 데이터, 소유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에디션(5/5)의 판매 이전까지는 아티스트와 타 에디션 구매자가 공동 소유권을 갖습니다.
-마지막 에디션의 판매 완료 시점 이후, 작가 본인은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 권리를 구매자들에게 전부 양도하고 완전히 잊겠습니다.
-완전한 판매의 이후, 양도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해당 작품의 언급 시 “ 땅데구르르, 비디오, 03’29’’, 2010 은 판매되었으며 작품에 대한 모든 권리는 구매자에게 있습니다” 로 대답하겠습니다.
간략한 작품 정보
-금색 방울을 망치로 때리는 내용의 영상입니다.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창작 워크숍2 (강사***) 수업의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제작 되었으며 수업에 참여한 인원(*명)에게 첫 공개 되었습니다. 이후 전시 미팅 및 각종 프로젝트의 사전 미팅에 에피타이져로 여러 차례 활용 되어 왔으며 개인 채널에(비메오와 유튜브) 아카이브 용도로 업로드한 바 있습니다.
🐶 : 네
D: 언젠가의 예민한 고대인이 이것저것 의심하고 씹고 뱉어 본 덕분에 제가 반찬 투정도 하고 칼로리도 계산해서 하루 다섯 끼를 먹을 수 있는 거겠죠. 워크샵 덕분에 발행해 볼 수 있었던 토큰도 고대인의 소일거리 비슷한 것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좋겠어요. 닮은 방향을 바라보는 다섯 분 정도를 만나서 무사히 판매도 해볼 수 있다면 더 즐겁겠죠. 아직은 다음 발걸음이 희뿌연 곳에 있을지라도 전에 디뎠던 걸음을 떠올리면 큰 걱정은 없습니다. 다만 거인의 어깨에서 태어난 우리가 저마다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는지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고보니 아직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네요. 잠시 쉬었다가 2교시에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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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nd Lucky <ぶんしんさま는 日記를 三分之計 한다> 양보리사, 1987.
[2] 거울을 손수 빚어 보면 무척 고되고 번거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둔감한 손끝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차이를 연마 제품의 넘버로 감지해야 한다. 친절하게도 단계별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어서 편히 머리를 비울 수 있다. 목표는 매끈하게 속이는 것. 매 넘버를 딛고 오를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당락을 점 친다. '할 일'과 '하는 몸'이 저마다 성실한 시간을 지내는 동안 나는 거울 너머 떠오르는 외곽의 날카로움을 비평하거나, Australopithecus Afarensis와 Anamensis의 건조한 러브스토리를 읊조린다. 무료함을 감추려, 나의 성능과 기억을 엮어 쌓은 제방(堤防)의 모양을 다시금 살피거나, 타협과 극복을 오가며 어디인지 모르는 부분의 성장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를 방해하는 티끌을 종일 털어내다 보면 문득 자신이 누구보다 예민한 관객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수도 있겠다.
[3] 2023년 마르티+푸(Malti+Poo)와 Marry Yang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가상의 소설 작가.
[4] 나는 도시에 살고 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논’이라는 이름뿐이었던 바닥 위로 솟은 신도시(新都市)이다. 헤아리다가 놓쳐 버릴 듯 높은 건물이 지칠 만큼 늘어서 있고, 가로등 없이도 환한 밤거리가 몇 개, 24시 편의점과 어린이 보호 구역이 두어 블록마다 있다. 횡단보도와 신호체계가 없이 건널 수 없는 길이 있고, 거의 모든 곳을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다. 15분마다 지나는 대중교통과 공공 와이 파이가 있다. 로켓 배송 기사님과 도시 미화원이 계신다. 실은, 근처에 스타벅스가 들어선 뒤에야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추신.
追伸.
하나뿐인 슈퍼마켓에 좋아하는 빵이 들어오는 날을 외우고 있었고, 공을 차면 꼭 농수로에 빠졌다. 눈치껏 빈 도로를 건너고, 하루 다섯 번을 안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걷거나 히치하이킹을 애용했다. 쥐기 좋은 막대기에 과분한 별명을 붙여서 온종일 앞, 옆, 뒷산을 들쑤시고 다니다 보면 사슴벌레 두어 마리는 잡는다. 문방구에 팔아서 환타랑 빵 사 먹으면 몇 십 원 남는데, 환타 병 팔아서 보태면 뽑기도 한 판 한다. 고이 꿍쳐 둔 삐라 열 장을 챙겨서 위병소에 갖다주면 건빵으로 바꿔준다. 꿩 잡으러 쏘다니다가, 개 장수 지나면 욕하고 영구차 지나면 머리 긁는다. 좋고 나쁘다는 정도로 가를 수 없는 시간이 지나, 매끈한 것들이 많아졌다. 굳은살이 필요한 건 여전하지만, 자주 교체 해주어야한다.
신체의 감지 성능이 따라잡지 못하는 대미지를 동반하는 작업을 할 때에는, 반드시 중간에 산책을 한다. 눈이 귀를 모르고 코가 폐를 모르고 털이 슬개골을 모르는 탓에 누구라도 피로를 토로하면 즉시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이름으로 다시금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을 때까지 근사한 시간을 갖는다. 아는 길을 아주 천천히 걷는다. 가능한 모든 이들이 걸음에 기여토록 한다. 이미 지친 이들이 있다면 여분의 도움을 얻어 균형을 따라잡는다.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느린 걸음을 걷는다. 언젠가 도래할 빠른 걸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걸을 수 있다. 덕분에 생긴 여유를 테이블 삼을 수 있게 되면-매번 질리지도 않는지-마음에 쏙 드는 별명이 있는지 묻는다. 오늘 선택한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사이. 어제나 내일 부를 이름을 기억하는 사이임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행여 따라주지 않더라도, 언제든 어려운 마음에 붙들릴 수 있음을 이해하므로 천천히 계속 걷는다.
땅을 접고, 하늘을 딛고, 불을 토하는 갖은 신비 중에 단연 마음을 사로잡은 건 분신술이었다. 저마다의 비법이 담긴 주문을 외우면, 대체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과 똑같은 인형이 등장한다. 적게는 둘부터 많게는 수 억인 것도 있고, 지속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말 그대로 비술이라 하니 그 원리는 알 길이 없다 하여도, 운용에 있어서는 흥미로운 점이 많아 보인다. 분신술이 완전히 동일한 신체를 지닌 분신을 탄생시키는 기술이며, 분신 모두가 동등한 개체라 하였을 때. 그리하여 진위 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이 동시에 등장하고 종합되는 것이라 한다면. 분신술사가 매번 축적하는 정보의 양은 가히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므로 빠른 선별과 도출 그리고 효율적으로 망각하는 기술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분신술의 진정한 묘미는, 비루한 나의 신체를 여럿으로 부풀려 바위 같은 걸 부수는게 아니라, 한 개인이 수 억인 분의 삶을 다루게 된다는 점이지 않을까. 아마도 훌륭한 분신술사는 호두를 많이 먹고 적정 수면 시간을 준수하며 꾸준히 상담 관리를 받는 건강한 사람이거나 뒤 끝없이 무책임 할 수 있는 사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