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중.
2026년 2월 1일 오픈 예정.
예언
한 바닥 정도 적는다. 흔히 그러하니. 빈 곳에 어두운 색 얼룩을 올려 빚을 거고, 가급적 도움을 청한다. 번역은 저마다 좋을 대로 했으면 한다. 어설프고 부정확한 것이 낫다. 예상 해볼 수 있는 질문에는 수줍은 척한다. 더 물어오면, 해가 지고 뜨기 전에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단번에 휘갈겼다고 답하자. 나머지는 닮은 발에게 묻자. 너무 다른 발에게는 정중히 더 큰 보답을 기약하자. 다음 중 알맞은 것은.
가영 : 나머지 공부를 하는 8살짜리가, 보일리가 없는데 보인다. 닮은 감정을 부르는 얼룩을 모아 기분에 맞게 조립한 것을 기억에 얹어 두었고 그 모양을 종종 떠올린다. 뿌듯하다. 참으로 근사하다. 참으로 거짓이므로 거짓은 아니다. 그렇게 답한다.
나영 : 걔는 글씨를 쓰는 게 느려서 거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달리기가 빨라서 토끼 이야기를 좋아한다. 토끼띠라서 그렇다. 물방개는 던지는 족족 버스비를 날렸고, 쥐띠는 거저 먹었다 한다. 보이고 들리고 닿는 게 많다. 앉으면 뭐든 쥐고 긋고 던져대서 혼이 난다. 그래서 달리면 다들 달리더라. 버티거나 일찍 가거나 하다 보면, 돌아 보거나 미리 보거나 할 수 있다. 이건 비밀.
다영 : 학우들의 글쓰기를 따라 잡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네모 칸에 맞추어 긋는 정성을 포기하고, 분할과 균형의 즐거움을 외면하고, 필압과 증거를 배신하고, 땀과 흑연으로 엉망이 된 손으로 젖은 종이를 힘껏 그어 찢는 성의를 보이면 심사자는 포기로 화답해주었다. (중략) 흰머리가 가득한 심사자는 스스로 복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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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대회상
기간 2024년 10월 11일 - 10월 29일 (13:00 - 18:30)
장소 (TOGETHER)(TOGETHER)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3길 74-18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아침부터 크게 다툰 날이었다. 편식을 한다던 지 비타민을 제때 먹지 않았다던 지 그런 시시콜콜한 이유였다. 그 탓에 예정보다 급히 나와버렸다. 취향에 꼭 들어 맞는 날씨마저 괜히 미운 날이었다. 평소 대중 교통을 애용하는 편이다. 이 도시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가뜩이나 좁은 길이 늘 반절 뿐이다.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간 저것이 자동차인지 커플인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모를 거다.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에게 이동 시간까지 개인 공간을 누리고자 한다는 건 과분한 일이다.
전시장은 어김없이 언덕 위에 있었다. 그래도 반가운 풍경이 많아서 오르는지도 모르고 도착했다. 문을 열면, 층과 층 사이에 내 머리가 있었다. 어깨 근처에 뭔가 복잡한 드로잉이 붙어있었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다만 계단을 내려갈수록 어깨에서 머리, 머리에서 위층으로 멀어지던 게 생각난다. 그러고는, 흰 바닥이 몇 개 있었고. 붉은 빛이 도는 나무 바닥과 벽이 인상 깊었던 탓에 더욱 도드라졌다. 몇몇 벽은 늘 그렇듯 흰 색이었으니 납득 가능한 선택이라 생각했고, 밟는 바닥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곳곳에 웅덩이가 있었고, 불투명한 초 같은 것이 절반쯤 채우고 있었다. 심지가 무척 길어서 몇몇 개는 다른 웅덩이와 이어져 있었다. 옆으로는 연두색 지우개밥 같은 게 있었나. 발톱이었나. 파인 흔적 같았는데 실제 자국은 아닌 듯 했고, 그린 듯 뭉뚝한 느낌이었다. 한 켠에선 뭔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구르는 금속음도 들렸다.
종이 두어장을 챙기며 이름도 적었다. 전시의 제목처럼 예언이라며 시작하는 글이었지만 회상하는 글로 보였다. 글에는 작업자가 남긴 이른바 작가의 말이라는 파트도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떠올려보자면, 아래와 같다.
"학창 시절 사물연구라는 수업이 있었고, 학기 내내 방울 몇 알을 들고 다녔었습니다. 대체로 반짝이고 소리가 나는 이것과 친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었는데, 땅데구르르르(video,3'29",2012)는 그 중 하나입니다. 한 번은 수업 발표를 위해 강의실 한 켠에 이런 저런 설치를 해 두었는데, 순서를 기다리던 중, 청소를 하시는 분께서 모조리 치워 버리셨어요.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빈 바닥 밖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제가 대신해서 마찰 없이 속 빈 소리만 잔뜩 뱉어 내는 수 밖에 없었어요. (중략) 네 맞아요. 방울이라 부를 만한 바닥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런 식으로 걸음을 빌어 바닥을 타격하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조형의 탄력을 흥미롭게 여겼어요. (중략) 아뇨. 반드시 체험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요. 관람의 장소인 만큼 시각 우선적인 관계를 생각했어요. 이미지에서 타격감을 끌어내는 경험을 여럿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이유로 동선의 흔적을 표현 할 때에도 명징한 단서라 하기 보단 어눌한 그리기로, 견고한 탄성보단 충분히 파손을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마감을 추구했어요. 이러한 전시에서는 적당히 어설픈 마감도 허락해주시는 감사한 마음을 알고 있거든요. (중략) 주술에 대한 관심은 늘 깊었죠. 침을 뱉어 길을 찾거나, 어울리는 것들끼리 이어댄다거나, 가장 소중한 것으로 물수제비를 던지고, 바위에 동전이나 숟가락을 붙인다거나, 물방개나 햄스터 같은 사물취급의 녀석들에게 생사를 배팅하는 경험이 꽤나 있거든요. (마침 딸랑이는 소리가 들린다) (중략) 드로잉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이번 작업 방식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드리자면, 먼저, 추적하기에 무척 번거로울 만큼의 도약을 거쳐 도출된 모양을 토대로 드로잉을 제작합니다. 이때, 망각이나 오해, 실수 등 자신의 신체가 감당 가능한 규모의 경계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시나 스타일의 값을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후 이 드로잉을 캐스팅합니다. 일종의 아주 낮은 고부조이자 저부조인 판을 얻어내면 이와 비슷한 두께의 (벽으로부터) 좌대를 짓고 결합합니다. 마감을 위해 광택, 오류, 강조가 필요한 부분을 조정하여 마무리합니다. (중략) 아, 실은 오늘 말씀 드린 건 대체로 거짓이고 그 반대이거나 순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위와 같다.
구덩이로 기우뚱한 바닥을 피해 한 층 반 정도를 올라갔고, 내려다봤다. 옅은 성취감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머리맡에 있던 부조판을 조금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정도. 흰 바닥이 애초에 조금 더 컸을 수도 있겠다는 단서 정도. 이곳이 아닌 어딘가의 바닥이었거나 벽이었거나 천장이었거나 손톱, 걸칠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납득이 가능한 것들을 고르는 취향을 비난하며 이것저것 잘라보다가, 자국이 남는 일에 과분한 책임이 달려드는 흔한 기억을 떠올리는 바람에, 여기 화면에도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붙였다 떼었다 한다. 다음.